카테고리 없음

직장인_이것은 사랑인가?(3)

몽환마교 2019. 7. 9. 10:42

 내일 장관님 면담에는 뭔가가 좀 있지 않겠습니까?”

 

있긴 뭘 있겠어

 

먼저 내밀게 없는데, 저쪽에서 줄 것도 없지, 뭔가를 내밀려고 한다면 검토보고서니 뭐니 하면서 벌써 우리보고 조사하라는 연락이 왔겠지

 

내일도 준비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까?”

 

없어, 내일도 별일 없어, 나는 내일 오전에 뭘 해야 하는지가 걱정이네, 임과장이 모레는 관광이라도 가시자고 말씀을 드려봐, 이렇게 기다리는 것도 한 두시간이지 좀 나가서 바람쐬고 하면 시간은 잘 갈 거야

 

, 틈이 생기면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이사님 나오십니다

 

  정이사가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나온다. 지사장을 위시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정이사를 주시한다. 정이사는 기다리고 있던 일행을 봐서인지 곧장 와서 자리에 앉는다.

 

사무실에서 기다리시지, 오래 기다렸습니까

 

아닙니다. 내일 장관 면담 관련해서 준비할 것도 있고, 현장 갔다오기에는 시간이 어정쩡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기업의 오너 임원이 현지 지사의 사무실에 방문 한번 안하고, 또 그 지사장이라는 사람은 굳이 정이사를 사무실로 모시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자고 먼저 말을 꺼내면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가는 것이다. 업무가 아니라 모시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정이사에게 맞추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임원까지 올 수 있었던 소장과는 다른 지사장의 관록일 것이다. 임원은 눈치를 잘 봐야 한다. 모두들 로비에 앉았다. 마르티네즈는 묻지도 않고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가 날라져 왔지만 정이사는 손도 대지 않는다. 눈치가 없기는 마르티네즈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 무엇을 드실건지는 물어보고 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대기업 오너 임원이 남미 어느 호텔의 로비에 앉아 회의 같지도 않은 회의를 하고 있다니 참 품격에 맞지는 않는다.

 

  재환은 도대체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알 수 없다고 느낀다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이사를 보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이사가 뭘 시키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와서 한 일이라고는 마사지 받으러 두 번 갔다 왔는 것 빼고는 없다. 그 외에는 객이나 다름없다. 정이사가 재환을 부르는 일도 없었다. 스스로 한심하기까지 했다.

 

  내일 만날 장관은 훌리오 세사르건설부 장관이다. 아버지는 구 스페인 귀족 출신이지만 어머니는 이곳 원주민 출신이다. 아니 원주민 출신이라고 보기보다는 원주민과 스페인 출신의 혼혈이다. 일종의 하프이다. 100% 원주민은 아니다. 그리고 훌리오의 어머니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훌리오를 놓고는 곧장 아버지와 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훌리오의 동생인 알렉산더는 정통 스페인 가문 출신의 어머니가 낳았다. 훌리오의 어머니는 훌리오를 낳고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 없다. 아마 혼혈과의 결혼을 못마땅해하는 시어머니의 등쌀에 돈 몇푼 받고 어디론가 영원히 떠났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서자가 대접을 못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곳 볼리비아 역시 그러한 점은 마찬가지였다. 절대권력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구 스페인 귀족 출신은 그 절대 권력의 힘이 나뉘어 지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훌리오 역시 집안의 경제적 역량은 거의 모두 알렉산더에게 집중되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야 했다. 훌리오 집안의 회사며 땅이며, 그 외의 자산까지 들리는 이야기에는 모두 동생 알렉산더에게 상속이 되었다고 한다. 훌리오는 장남이었지만 결혼도 하지 못한 어머니가 낳은 서자라고 하기에는 좀 이야기하기가 뭐한 그런 출신(나름 본부인이 낳은 아들?)이기에 장자로서의 권리를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그래도 집안에 재산이 워낙 많아 교육은 받을 수 있었다.

 

  모랄에스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훌리오 역시 동생의 밑에서 일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또 그것이 혼혈인 훌리오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문에서  오랜 세월 쌓은 부가 장자인 훌리오에게는 전해지지 못하고 그 동생인 알렉산더에게 전해지는 것은 수많은 혼혈들이 살고 있는 볼리비아에는 정말 흔한 일이었다.

 

  노동조합 출신의 모랄레스가 원주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자 일단 공직사회를 구성하는 인원이 달라졌다. 기존 요직은 모두 스페인 가문 출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모랄레스는 이들을 모두 내쫓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원주민이나 혼혈 출신의 인재로 채워넣었다. 그리고 정부의 권력과 나라의 부가 스페인 가문 출신의 자산가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을 모랄레스는 차단했다. 그 와중에 스페인 자산가들의 숱한 반발이 일어났지만 원주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가지고 있는 모랄레스는 요지부동이었다. 원주민과 혼혈출신의 관료들은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꽉 움켜지었다.

 

  건설부 장관인 훌리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볼리비아 건설부를 이끌었다.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에 항구를 만들기 위해 칠레와 페루에 영구 임대 형식의 항구를 임대하는 것을 추진하는가 하면 그동안의 변변치 못했던 이웃나라로 연결되는 도로를 새롭게 신설하고 보수하여 물류가 원활하게 이동 할 수 있도록 일을 추진했다. 과거 스페인 출신의 백인이 건설부 장관을 하고 있을 때 보다는 일종의 혁명이었다. 작은 변화의 흐름은 큰 기대로 돌아왔고 국민의 커진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더욱 노력했다. 이제 볼리비아는 달라지고 있었다.

 

  그만큼 내일 만날 훌리오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서는 아니 될 사람이었다. 지사장의 얘기를 들어보니 훌리오가 먼저 정이사를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훌리오는 볼리비아 공사와 관련하여 EDCF 자금 지원 협약을 맺으러 한국에 온 적이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뭔가 좋은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라고 했다. 그러한 상대를 만나러 가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는 것은 위험했다. 최소한 건설부 장관을 만나러 갈 때는 뭔가의 카드 한 장 쯤은 가지고 가야 하는데 정이사는 내일 내밀 카드가 없었다.

 

임과장은 내일, 장관을 만나러 갈 때 동행하기로 하지

 

~?”

 

  지사장의 보고를 듣고 있던 정이사가 갑자기 한 말이었다.

 

내일 장관 만날 때 같이 동행해서, 우리회사 사업 포트폴리오와 앞으로 진출계획에 대해서 브리핑 할 수 있도록

 

, 그런데 앞으로 진출계획이라 하심은?”

 

  도대체 무슨 진출 계획이란 말인가? 재환으로서는 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임원이나 부장급도 아닌 재환이 그룹의 진출 계획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자료는 내가 기전실에서 가져온 게 있으니 그걸 참조해

 

 

지사장님은 내일 우리회사 현지 지사현황과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서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구요, 내일 오전에 지사에 들릴테니 그곳에서 한번 검토해보고 출발하도록 합시다

 

 

  겨우 일같은 일이 생긴 것 같다. 갑작스레 준비하라는 자료에 좀 뻥찐 기분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괜히 따라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보다는 낫다. 일단은 지사로 가서 내일 브리핑 자료를 챙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