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리고 동감
직장 생활에 실패하면 혼자 망가진다. 창업에 실패하면 온 가족이 망가진다.
필자가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다. 부도의 조짐은 이미 몇년 전 부터 있었지만 어떻게 해 볼 수 는 없었다. 부도 전 3년이란 시간을 통해 회사는 서서히 침몰해갔고 그 와중에 배를 수리하려는 노력도 해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부도는 불경기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와 함께 굴러가는데 도저히 그 바퀴를 멈출 수는 없었다.
배에서 뛰어내리려고 해보았다. 다른 배로 갈아타는 방안도 강구해보았지만, 그 배 역시 침몰로 항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같은 업종의 배는 모두가 똑같았다. 아예 종류가 다른 배로 갈아타려고 해보니 지금까지 탔던 항해의 경력은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마치 배를 처음 타는 사람 취급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침몰로 항해하는 배를 타고 계속 항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침몰하면 그 때 다른 배로 갈아타지 그런 생각 뿐이었다. 집값 대출에 아이들 양육비에 담배까지 줄여가며 버티고 버티었지만 침몰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배에서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처음에는 상여금이 나오지 않았다. 형편이 되면 준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월급이 보름, 한 달, 두 달 밀려나왔다. 나중에는 그나마도 밀려 나오는 월급이 80%, 50% 이렇게 나왔다. 가정을 꾸려갈 수 가 없었다.
진작 이직이라도 했어야 했지만, 당시 경기 상황에서 이직은 거의 불가능했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의 직원이 다른 동종 기업으로 이직을 해 본 들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다. 월급이 80%, 70% 나오느냐 그 차이였다. 다들 내리막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판사판으로 창업을 결심하고 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퇴직금은 포기했다. 일 년 전에 퇴직한 직원도 받지 못했는데 형편이 더 안 좋아진 지금에 와서 퇴직금을 받는 것은 기대할 수 가 없었다. 그동안 모은 돈은 집을 사느라 다 들어가고 남은 것은 대출금 1억과 억지로 모은 몇 천만 원이 전부였다.
준비할 수 있는 만큼 모든 자금을 모아보았지만 최대 일억원이었다. 일억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하겠지만 예상외로 창업 가능한 소자본 사업 종류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소자본 창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정 부분의 수입 창출만 가능하다면 집사람 맞벌이에 투잡까지 뛴다면 생활의 유지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가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일억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성공을 장담 할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일억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았지만 투자를 실패하면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최소한의 보장이 되지 않는 돈 놓고 돈 먹기의 판이었다. 그래도 돈을 좀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련만 내가 보기에 실패하면 돈은 곧장 사라지는 그런 판이었다.
자판기 사업 – 하루에 한 번 자판기 관리하면서 돈만 가져가면 된다. 기계당 투자금은 300만원이다. 이익금을 직접 관리 여부에 따라 나누어 먹는다. 라면, 음료수, 달고나, 뽑기, 커피 장소에 따라 설치할 수 있는 자판기의 종류는 많았고 본인 가게만 있자면 본인이 직접 구매해 설치도 가능했다.
식당마다 설치되어 있는 작은 커피 판매기는 대개 무료였고 다른 자판기는 놓을 곳이 없었다. 돈 되는 자판기를 중고로 사서 직접 설치하는 것이 더 돈이 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억지로 주인과 협의하여 설치한 자판기도 주인에게 이익의 50%를 떼 주고 나면 정말 코 묻은 돈만 남았다. 재료값과 자판기 할부금을 빼면 그나마 적자 안 나면 다행이었다.
붕어빵 – 텃세가 너무 심했다. 조폭이 관리하고 그런 것은 없었지만 상가 앞에는 설치 할 수 가 없었다. 장사에 방해되니 모두들 멀찍이 떨어져 장사를 하기를 원했다. 노점상이 별 수 있나? 원하는 만큼 떨어져서 붕어빵을 구웠다. 식으면 안 사먹었다. 어묵은 불었다고 안 먹었다. 갑자기 와서 만원어치 시키고 굽는데 시간 걸린다 하니 그냥 갔다. 미리 구우면 식어서 안 먹기에 구워 준다고 하니 편의점 가서 다른 것 사먹겠다고 그냥 간다고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매출은 급격히 추락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붕어빵을 찾는 사람보다 붕어싸만코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았다. 어묵은 아예 먹지를 많았다. 붕어빵만 구워 팔기에는 너무나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떡볶이를 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노점을 하시는 분이 떡볶이는 이미 자신이 하고 있으니 필자가 하려면 다른 것을 하라고 했다. 길거리 노점에서 다른 것 할 만한 것은 호떡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날씨가 더우니 호떡을 안 먹기는 매 한가지였다.
테이크아웃 – 이동식 차량 커피 테이크아웃점을 잠깐 경험삼아 주인이 여행을 간 틈을 타 운영을 해보았다. 힘들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었다. 아침 출근 전, 점심식사 시간이 전부였다. 좁은 차 위에 올라앉아 각종 시럽과 휘핑크림 등 커피를 만드는 것만 해도 피곤한데 커피 장식에 손님 응대까지 하려니 정말 피곤했다. 그리고 하루의 결산을 마쳐보면 잘 남으면 재료비 빼고 10만원 벌이였다.
피자가게 – 피자가게는 배달 아르바이트만 했었다. 피자도 몰리는 시간에만 피자가 몰린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난 뒤에 저녁에 피자를 주로 많이 먹었다. 월급제 아르바이트였건만 월급을 가져가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배달은 간혹 있었다. 물어보니 피자 배달은 피자헛이나 도미노 등 할인이 되는 메이커 피자를 주로 배달 시켜 먹는다 하였다. 배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피자도 구웠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필자가 마지막 월급을 받기 한 달 전 계약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사장님은 피자가게를 접었다. 문을 닫으면 최소한 손해는 안보니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피자헛에서 쿠폰으로 할인을 해주면 동네 피자와 가격이 거의 비슷해지니 동네 피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쿠폰 할인에 이벤트 할인까지 받으면 어떤 때는 동네 피자보다 가격이 더 쌌다. 누가 동네 잡 브랜드 피자인지 모르나 시답잖은 개그맨이 선전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아이돌이나 걸그룹이 선전을 하는 피자만 학생들은 좋아했도 배달을 시켜 먹었다. 결국 사장님은 견디다 못해 피자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피씨방 먹거리 납품 – 피씨방에 먹거리를 대주는 사업을 해보았다. 쥐포와 시시한 과자, 김밥, 빵, 훈제치킨, 냉동피자, 빵 등 손님이 먹을 만한 것은 모조리 납품을 했다. 매일 두 번씩 피씨방을 돌면서 납품을 했는데 역시 남는 것이 없었다. 당초 업체 사장은 월 500은 가져간다고 했는데 월 50 가져가기도 힘들었다. 정말 돈이 되는 먹거리는 피씨방 사장이 직접 구매했다. 돈 안되고 귀찮은 것만 나갔다. 당연히 사람들은 잘 사먹지를 않았다. 피씨방에서는 라면, 볶음밥, 핫도그, 샌드위치. 심지어는 튀김도 만들어 주었다. 컵라면과 음료수는 옛날 얘기였다. 필자가 공급했던 훈제치킨, 김밥, 빵, 냉동피자 등은 먹지도 않았다. 필자의 돈으로 전자레인지까지 사서 비치를 했지만 그 전자레인지는 피씨방 알바의 밥을 덥히는 용도와 따끈한 우유를 만드는 용도,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라면을 끓이는 용도였다. 필자가 매장을 방문했을 때 필자의 먹거리를 사먹는 손님을 본 적은 한 번 도 없었다. 결국 전자레인지도 회수하지 못한 채 이 사업도 접었다.
치킨 집 – 치킨 집을 창업해 보고자 국내 최고로 유명한 치킨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빴다. 돈도 한 달에 얼추 200은 가볍게 가져갈 수 있었다. 치킨을 튀기는 작업도 어렵지 않았다. 교육을 조금 받으니 누구나 치킨을 튀길 수 있었다. 아주 쉬웠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 본 치킨집도 경영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판매가 대비 원가 비중이 너무 높았다. 한 마리 팔면 4,500~5,000원이 남았다. 주인 부부가 운영을 했는데 두 명이 한 달에 350 정도를 가져갔다. 위치상 임대료가 너무 높았다. 사장은 어차피 배달 위주의 장사이니 굳이 여기서 차리지 말고 다른데 차리자고 했으나 본사에서는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브랜드 이미지가 있으니 지하에 매장을 내주는 것은 있을 수 가 없다고 했다. 10평짜리 가게에 한 달 300만원의 임대료는 너무도 비쌌다. 몇 번이나 치킨 집을 그만두려 했지만 가게 임대차 계약상 해지의 문제와 본사와의 계약 파기 문제 등등 여러 가지 문제로 문을 닫을 수 도 없었다. 그 와중에 롯데마트에서 통 큰 치킨이라는 것을 개발해 우리 치킨 집은 역적이 되었다. 너무나 비싼 치킨이라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비싼 치킨도 맞고 불매 운동을 하는 것도 맞지만 그 모든 것은 높은 가격으로 치킨을 팔게 만드는 본사의 볷이 아닌 가맹점주와의 일이었다. 그리고 망하는 것은 본사가 아닌 가맹점주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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